예술 디자인 교육의 창조적 진앙지
오직
계원예술대학교를 위한
자주 하는 질문

반갑습니다. 듣자 하니 ‘소개’에 일가견이 있으시다던데, 이번에도 한번 부탁드립니다.

이름은 민구홍이고, 중앙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미국 시적 연산 학교(School for Poetic Computation, SFPC)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하지만 ‘좁은 의미의 문학과 언어학’으로 부르기를 좋아합니다.)을 공부했습니다. 안그라픽스를 거쳐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겸 출판사 워크룸에서 편집자 겸 디자이너 겸 프로그래머(하지만 되도록 ‘편집자’라는 직함을 유지하려 합니다. 세 가지 업무 모두 도저한 에디터십이 필요한 까닭입니다.)로 일하는 한편, 근근이 민구홍 매뉴팩처링(Min Guhong Manufacturing)을 운영합니다.

지은 책으로 『새로운 질서』(미디어버스, 2019)가, 옮긴 책으로 『이제껏 배운 그래픽 디자인 규칙은 다 잊어라. 이 책에 실린 것까지.』(작업실유령, 2017)가,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다룬 책으로 『레인보 셔벗』(작업실유령·아카이브 봄, 2018)이 있습니다. (특히 『레인보 셔벗』은 최성민 선생님이 드물게 인쇄를 감리하시기까지 했죠. 디자이너로서 그만큼 마지막까지 공을 들이셨다는 뜻이겠죠?)

어떤 대상을 알리는 ‘소개’는 분야를 막론하고 반드시 필요한 행위이자 절차입니다. 여기에 산업을 더하면 홍보와 마케팅이 되고, 예술을 더하면 창작과 전시·공연이 되겠죠.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소개’가 지닌 이런 특성을 편집해 여러 방식으로 회사, 즉 민구홍 매뉴팩처링 자체를 소개하는 데 주력합니다. 각 분야의 기관, 단체, 기업, 개인 등과 협업하거나 그들에게 기술을 지원하기도 하고요.

모쪼록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과연 듣던 대로군요. 오늘 특강은 어떤 내용으로 이뤄지나요?

신해옥 선생님의 커리큘럼과 학생분들께 미리 전달받은 질문을 참고해 민구홍 매뉴팩처링 공식 웹사이트의 「자주 하는 질문」 형식으로 꾸며봤습니다. 생각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몇몇 질문은 추후 「자주 하는 질문」에서 답변하겠습니다.

정보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기 전에, 다시 말해 본격적으로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전에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소양 같은 게 있을까요?

한 명의 ‘현대인’으로서 웹 기술을 익혀보고 싶은데, 추천할 만한 책이 있을까요?

수영을 익히려면 얕더라도 일단 물에 들어가야 하듯 웹 기술을 익히기 가장 좋은 학교는 아무래도 웹이겠죠. 웹 기술에 관한 책을 기획하고, 집필하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인쇄하고, 유통하는 순간에도 기술은 발전하고, 다듬어집니다.

우선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을 익혀 자신의 관심사를 다룬 웹사이트를 하나 만들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CSS(Cascading Style Sheets)를 익히고픈 욕망이 입니다. 그 뒤 욕망은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JS), PHP(PHP: Hypertext Preprocessor), 파이선(Python), 루비(Ruby) 등으로 확장하고, 욕망이 더욱 커진다면 자신만의 컴퓨터 언어까지 만들게 될지도 모르죠. 즉, 어디에 사용할지 모를 기술에서 시작하는 게 아닌 아닌 자신의 욕망에 따라 기술을 취하는 게 흥미와 동력을 잃지 않는 방법입니다.

단, 어떻게 시작하는지가 중요할 텐데, 민구홍 매뉴팩처링 주위에는 「새로운 질서」와,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존 프로벤처(John Provencher)가 운영하는 프루트풀 스쿨(Fruitful School)이 있습니다.

아날로그 정보를 디지털화해 웹사이트로 옮겨보려 합니다. 이때 유념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새로운 질서」의 실습 가운데 「문서를 문서로」가 있습니다. 실습명 그대로 (아날로그) 문서를 (디지털) 문서, 즉 웹사이트로 옮겨보며 두 매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경험해보는 과정입니다.

우선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른 뒤 마음에 드는 콘텐츠가 담긴 지면을 화면에 거의 그대로 재현해봅니다. 자나 캘리퍼스 등을 이용해 여백을 포함해 지면 속 여러 요소의 너비나 높이를 재면서요. 일종의 필사(筆寫)사생(寫生)이죠. 이 과정에서 본문 글자 크기는 대개 3.5밀리미터 안팎이고, 글줄의 베이스라인 사이는 6밀리미터 안팎임을, 나아가 여기서 파생한 수치를 모듈 삼아 여백의 너비, 요소의 너비나 높이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센티미터와 밀리미터가 픽셀로 치환되는 순간, 즉 책 속의 콘텐츠가 웹 브라우저상에 자리하는 순간, 고민이 시작됩니다.

콘텐츠는 일단 여러 성격을 지닌 상자 속에 자리합니다. 화면은 너무 넓거나 너무 좁습니다. 책의 장(章, page)이라는 개념 또한 사라집니다. 각주, 방주, 미주 같은 부가 장치는 본래의 기능이 흐릿해지거나 하이퍼링크로 위상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페이지가 길어진다면 그 뒤에는 Y축을 오가는 내비게이션을 고안해봅니다. 콘텐츠를 열람하는 데 일조할 또 다른 기능이나 효과를 부여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는 처음부터 책이라는 전통을 계승했기 때문에 안전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딘가 진부하기도 합니다. 진부함을 충분히 경험한 뒤에는 콘텐츠를 담는 바구니를 자신의 관심사나 취향에 따라 다시 규정해봅니다. 과수원, 계곡, 테이블, 전광판, 식당 메뉴판, 국수 타이머, 지도, 체스판 등으로요. 그리고 그에 맞게 콘텐츠에 다시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고, 이 과정을 반복합니다.

정보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를 거칠게 소개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단계마다 고민하고 시도하고 실험할 바가 무궁무진합니다.

콘텐츠가 동일한 책과 웹사이트가 있다면, 둘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콘텐츠가 동일하다면, 굳이 두 매체를 넘나들어야 할까요? 소비자는 대개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까요?

단, 생산자로서 콘텐츠 이전에 두 매체를 넘나드는 상황 자체가 중요하다면, 기본적으로 콘텐츠의 특성과 두 매체의 한계를 파악해 각 매체가 서로 보완하는 관계를 고안해야겠죠. 상호 참조할 수 있도록이요.

예컨대 민구홍 매뉴팩처링의 회사 소개 방식을 다룬 책과 웹사이트가 있다면, 콘텐츠의 성격에 따라 매체를 나누고, 책에는 웹사이트로 이동하는 QR 코드 같은 장치를, 웹사이트에는 관련 지면의 쪽 번호를 안내하는 등의 장치를 삽입하는 식이겠죠.

웹사이트는 책에 비해 수명이 짧은 매체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웹사이트를 무엇으로 규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죠. 위키백과에 ‘민구홍 매뉴팩처링’ 항목 등재를 독려하는 이 웹사이트의 수명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워크룸 웹사이트에 숨겨진 민구홍 매뉴팩처링 페이지는요? 웹사이트를 리플릿 정도로 규정하면 수명은 몇 달이 채 안 될 겁니다.

1990년 무렵 웹의 탄생과 함께 등장한 세계 최초의 웹사이트는 특별한 기술 없이 여전히 무리 없이 동작한다는 점에서 세계 최고(最高·最古)의 웹사이트이기도 합니다. 우아하고 실용적인 문장으로 웹 자체를 소개개하는 이 웹사이트는 서버만 제대로 작동한다면 모든 책보다는 아니지만 어떤 책보다는 훨씬 더 오래 존재하겠죠.

웹사이트를 안전하게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컴퓨터 과학자 제프 황(Jeff Huang)「웹 콘텐츠 보존을 위한 매니페스토」(A Manifesto for Preserving Content on the Web)에서 주장한 바 있습니다. 요컨대 이렇습니다.

순수한(vanilla) HTML과 CSS로. 여러 페이지보다 한 페이지를. 웹 폰트보다는 웹 안전 폰트(Web Safe Fonts)를. 이미지 용량은 강박적으로 작게. 더는 작동하지 않는 하이퍼링크가 없도록.

잠깐만요. 코딩 과정에서 어려움에 봉착했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일단 코딩을 글쓰기라 생각하시고, 코드에 오탈자나 잘못된 띄어쓰기가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코딩은 실제로 글쓰기입니다. 의사소통의 대상이 인간이 아닌 컴퓨터일 뿐이죠. 단, 컴퓨터는 인간만큼 마음이 따뜻하지 않습니다. 코드에 오탈자나 잘못된 띄어쓰기가 있다면 조금도 너그럽지 않죠.

코드에 문제가 없다면 문제는 다른 데 있겠죠?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해답만큼은 이미 웹상에 있습니다. 구글 같은 검색 엔진을 적극적으로 이용해보시기 바랍니다. 검색 엔진의 무한한 권능을 믿는다면,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분명히 어딘가에 있습니다.

참고로, 프로그래머 사이에는 모니터 옆에 고무 오리를 두는 풍습이 있습니다. 고무 오리에게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를 천천히 설명하면, 고무 오리가 용기를 주기 때문이죠. 즉, 문제를 뭉뚱그린 생각이 아닌 말로 정리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문제는 일단 반 정도 해결됩니다. 문제를 적절한 검색어로 추상화할 가능성이 생긴 셈이니까요.

팬데믹으로 문화계에서 온라인 활동이 눈에 띄게 왕성해진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시도도 많이 보이고요. 팬데믹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요? 미래를 예언해주세요!

코로나가 우리에게 안긴 장점이 있다면 이제껏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온 것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는 점일 겁니다. 웹 또한 그 가운데 하나고요.

많지는 않지만, 웹을 그저 또 다른 인쇄물로 여기지 않는 태도가 반갑습니다. 초창기 웹은 과학자들끼리 논문을 조금 더 편리하게 공유하기 위해 발명됐습니다. 즉, 인쇄물에서 비롯했죠. 하지만 오늘날 웹의 논리는 인쇄물과는 전혀 다릅니다. 예컨대 특정 행사를 위한 웹사이트가 기존의 포스터나 리플릿, 도록 같은 역할만 수행한다면, 즉 마지막 단계에서 모든 것을 갈무리할 뿐이라면 웹의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꼴입니다.

웹을 웹답게 이용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전체 프로젝트 맨 앞에서 프로젝트를 촉발해 프로젝트 전반을 끌고 나가는 플랫폼으로 삼는 거죠. 웹사이트 안에서 모든 활동이 일어나고, 축적되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버그가 튀어나오고, 방문자는 이런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람하거나 상황에 참여하고, 종국에는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결과물이 드러나고, 그렇게 하나의 추억이 생성되고…

이는 인쇄물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영원한 베타(perpetual beta)’라는 웹의 태생적 속성에서 비롯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초기 단계부터 변수마저 예측해 상수로 삼는 꼼꼼한 설계가 필수적이겠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긴 합니다.

생산자이기 이전에 소비자로서 웹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도가 더욱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 또한 제 몫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는 언젠가 도달할 미래를 미리 체험하는 일일지 모릅니다. 이번 기회에 (아무도 이런 기회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웹이 이제껏 경험해온 웹과 전혀 다를 수 있음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체험한다면, 코로나가 종식된 뒤에도 웹은 일시적, 그리고 불가피한 유행을 넘어 자신만의 영토에 꽂힌 깃발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단, 특정 세대들에게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의 시끌벅적함을 체감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저 또한 느닷없이 일상에 틈입한 화상 회의가 여전히 어색합니다.) 언제나 고요하고 깔끔해 보이기만 하는 웹상에서 이를 가늠할 수 있는 장치는 방문자 숫자나 트래픽 초과 메시지뿐이죠.

“코로나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라는 권준욱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의 발언은 정말이지 준엄했습니다. 이 발언이 기우이기를 기원합시다.

‘최애’ 태그가 <a>라 밝힌 바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태그와 가장 싫어하는 태그는 무엇인가요?

두 번째는 콘텐츠를 순서가 중요하지 않은 목록으로 규정하는 <ul> 태그, 세 번째는 순서가 중요한 목록으로 규정하는 <ol> 태그, 네 번째는 두 태그에 딸린 자식 태그인 <li> 태그입니다.

『새로운 질서』에서 밝혔듯 모든 콘텐츠는, 그게 시 한 편일지라도, 목록화할 수 있습니다. 모든 콘텐츠 속 요소에는 중요도와 그에 따른 열람 순서가 있으니까요. 콘텐츠를 목록화할 수 없다면 아무래도 콘텐츠 자체에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걸 테고요.

어떤 대상을 싫어하는 데는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 것보다 정신적인 에너지가 더 필요합니다. 뒷맛도 개운하지 않고요. 따라서 좋아하는 태그를 두 가지 더 밝히는 쪽을 택했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혹시 인터넷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셨나요?

제게 자율 주행 전기 자동차 같이 어떤 사람에게 인터넷은 실제로 경험해본 적이 없는 기술일지 모릅니다.

저만 해도 집 앞 경의선숲길에서 흐드러진 벚꽃 내음을 만끽하고, 고즈넉한 연희동 골목을 거닐다 보면 인터넷이나 웹사이트 같은 건 원래 없던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런 게 과연 제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인터넷이 아무리 유용하더라도 자신의 생활이 특정 기술에 종속되는 건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습니다. 평소에 다리 운동을 적절하게 해두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상황에도 별로 당황할 필요가 없죠. 마찬가지로 평소에 인터넷 밖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여지를 넓혀놓는다면, 인터넷을 사용할 때 조금 더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요?

회사 공식 웹사이트의 「자주 하는 질문」 페이지가 퍽 재미있더군요. 게다가 접속할 때마다 순서가 무작위로 정렬되기까지 하던데, 이런 식으로 질문과 답변을 정리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모름지기 한 회사의 공식 웹사이트라면 「회사 소개」 외에 응당 갖춰야 할 정보 아닐까요? 회사를 향한 고객의 궁금증을 파악해 미리 해결해주는 것 또한 회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반복되는 질문에 연거푸 답변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있고요.

내용의 60퍼센트 정도는 지난 5년여 동안 실제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인용했습니다. 이곳을 통해 일상에서 갑자기 누군가 던진 질문에 뒤늦게 답하기도 하고요. 나머지는 스스로 묻고 답하는 형식 실험입니다. 먼저 필요하겠다 싶은 답변을 마련한 뒤 그에 어울릴 만한 질문을 만들기도 합니다.

순서가 무작위로 정렬되는 방식을 택한 건 모두 곱씹어볼 만하므로 우선순위를 가리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웹사이트를 제작할 때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히면 어떻게 해결하는 편인가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은 구글이나 네이버가 아니므로 기술적인 한계가 명확합니다. (물론 구글이나 네이버일지라도 기술적인 한계가 있긴 하겠죠.) 따라서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 범위 안에서 최선의, 나아가 가장 단순한 해결책을 고안하려 합니다. 그러기 어렵다면 우회 전략을 사용하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작업의 요체가 될 만한 개념이 생성되기도 합니다.

워크룸의 김형진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디자이너로 일하려면 평소에 자신만의 단어장을 두껍게 해둘 필요가 있다.” 여기서 ‘단어’는 자신만의 방법론이나 시각 언어 같은 거겠죠. 이처럼 평소에 단어를 공부해둘 필요도 있겠습니다.

오늘날 웹 디자인 트렌드에서 특히 눈여겨보는 부분이 있나요?

열한 살 무렵 첫 웹사이트를 만든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웹사이트를 경험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웹 초창기, 즉 웹 1.0 시절의 분위기를 재현한 브루탈리즘(Brutalism) 트렌드가 주목받기도 했죠.

트렌드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일본의 배우 아베 히로시의 공식 웹사이트를 소개하곤 합니다. 1996년 무렵 한 팬이 만든 웹사이트를 배우가 공식 웹사이트로 삼으면서 지금까지 당시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웹 기술에 갓 입문한 사람이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최신 정보가 충실하게 업데이트되고, 과거 사진, 에세이 등 배우를 둘러싼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정보도 싣고 있습니다. 여전히 구형 해치백을 몬다는 배우의 취향까지 알게 된다면, 배우의 웹사이트로는 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동안 쌓인 시간 덕에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아우라가 느껴지기까지 하고요. 장영혜 중공업이나 양혜규 선생님의 웹사이트 또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무엇이 트렌드가 됐다면, 이는 관습화했다는 뜻이고, 다시 말하면 진부하다는 뜻입니다. 카르고(Cargo)에 진열된 갖가지 템플릿이 좋은 보기입니다.

진부함은 진부함 나름대로 누구에게나 익숙하다는 점에서 실용적입니다. 진부함 덕에 낯섦이나 파격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시도가 유의미해지기도 하고요.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유머를 곁들이는 장치로 트렌드를 활용하는 편입니다. ‘계량 한복’처럼요.

“지금 웹사이트를 하나 만들고 있는데, 내비게이션을 화면 어느 곳에 배치하는 게 좋을까?” ‘가장 친한 미국인 친구’로 자신을 소개해달라는 로럴 슐스트(Laurel Schwulst)가 언젠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웹사이트를 규정하는 만큼 전문가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답은 트렌드 같은 콘텐츠 밖에 있지 않습니다. 결국 이렇게 격려할 수밖에 없었죠. “그냥 콘텐츠에 맡겨. (Just follow the content.)”

밤을 새워 작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가정해봅시다. 간식으로 수박, 멜론, 복숭아, 무화과, 체리 가운데 한 가지만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어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수박, 멜론, 복숭아는 일단 껍데기나 껍질을 벗기는 일이 조금 성가십니다. 게다가 수박과 멜론은 이뇨 작용을 돕기까지 하고요. 체리는 씨앗을 뱉을 그릇이 필요해지고, 그럴 때마다 작업의 흐름이 끊기겠죠? 그러니 무화과가 아무래도 무난할 것 같습니다. 단, 너무 많이 먹으면 무화과에 함유된 단백질 분해 효소 탓에 입 주변이나 혀가 쓰라릴 테니 주의해야겠지만요.

하지만, 누군가의 욕망을 대신 채워주는 일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다른 사람들(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포함해)은 포근한 이불 속에 있는데, 전자파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면, 간식이 트러플을 곁들인 애플 망고구야바노일지라도 별로 행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안그라픽스나 워크룸에 기생하기 전에 민구홍 씨가 다른 회사에 속한 적이 있나요?

회사는 아니지만, 안상수 선생님 연구실인 ‘날개집’에서 연구원으로 일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부터 안그라픽스에 입사하기 전까지 1년 조금 안 되게요. 직함과 달리 하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안상수 선생님께는 편지 봉투에 편지지를 올바르게 넣는 법만큼은 제대로 배웠습니다. 김동신, 김병조, 노은유, 박찬신, 박하얀 씨 등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동료를 만난 것도 그때고요.

민구홍 씨의 MBTI가 궁금합니다. 사실 이것만 알면 충분합니다. 이유는 묻지 마시기 바랍니다.

판정 결과 INTP-A입니다. “단, 이들에게 업무 진행 상황에 따른 보고서 따위를 제출받기를 기대하지는 않는 게 좋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는 사용하지 않나요?

설립 초반에 회사를 소개할 목적으로 호기 있게 사용해봤는데, 사용할수록 회사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글 한 줄을 게시하려 해도 이미지나 영상이 필요하고, 트위터에서는 글자 수에 제한이 있죠.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한다는 건 이런 제약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인스타그램에서는 게시물 속 하이퍼링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해당 기능이 활성화한다지만.) 이는 사용자가 되도록 오랫동안 ‘환상의 세계’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인스타그램의 전략이겠죠?

또한 ‘좋아요’ 기능은 취지와 무관하게 자신의 게시물을, 나아가 자신을 현실에서 만날 일이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에게 평가받는 위치로 옮겨 놓습니다. 그것을 눈으로, 게다가 깜찍한 하트 아이콘과 불과 몇백에 불과한 숫자로 확인하는 건 고역입니다. 모든 사람이 ‘좋아요’ 개수가 많을 수는 없을 테니 누군가는 스스로 초라함을 느끼거나 자신의 삶 자체를 부정할지 모르고요. 타임라인이 지닌 중독성 탓에 정신 없이 빠져들다 보면 거기서 벗어나기 두려워지는 현상은 일찍이 ‘PC 통신’ 시절부터 경험해왔습니다. 결국, 민구홍 매뉴팩처링에서는 소셜 미디어에서까지 워크룸의 계정에 기생하기로 했습니다. 이미 축적된 팔로워도 많고요.

2021년도 어느덧 중반을 향합니다. 하반기 계획은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계획을 완벽하게 세우는 편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냥 상황에 맡기는 편이고, 그 사이에서 계획을 세울 여지를 열어두는 편입니다. INTP-A답죠?

2021년 3월부터 매달 더 북 소사이어티 웹사이트에 회사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장영혜 중공업 귀중」에 관한 글「민구홍 매뉴팩처링 시계」에 관한 글이 소개됐는데, 앞으로 힘 닫는 데까지 임해볼 생각입니다.

한 출판사와 HTML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책을 쓰기로 계약했고, 그래픽 디자이너 겸 교육자 데이비드 라인퍼트(David Reinfurt)『A *New* Program for Graphic Design』을 번역하고 있는데, 예상보다 늦어질 것 같습니다.

한편, 오늘날 예술계의 화두인 NFT(Non-Fungible Token) 플랫폼에 기술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곧 론칭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성사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한 사설 갤러리와 여러 방식으로 회사를 소개하는 일에 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과정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일 또한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소설가 박민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소설이 내 몸을 빌려 자신을 쓰는 것이다.” 민구홍이 민구홍 매뉴팩처링을 소개하는 게 아닌,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민구홍의 몸을 빌려 자신을 소개하는 단계가 오면 좋겠습니다.

‘예술 디자인 교육의 창조적 진앙지’를 표방하는 계원예술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해볼 생각은 없나요?

언젠가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새로운 질서」를 가르쳐보면 좋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있습니다. ‘현대인을 위한 교양 강좌’라는 점에서, 어린 시절 제가 경험한 몬테소리 교육법(Montessori method)처럼요.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예술 디자인 교육의 창조적 진앙지’라면, 민구홍 매뉴팩처링이 계원예술대학교에 기생하는 것 또한 영광이겠습니다.

‘자주 하는 질문’을 표방한 특강을 질의 응답으로 마무리하는 게 과연 온당할까요?

글쎄요? 필요하다면 성심성의껏 임하겠습니다.

슬슬 마무리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이 있다면요?

특강을 마친 뒤에는 기념으로 학교 기념품점에 들러 티셔츠를 구입하곤 합니다. (2019년 특강을 마치고 선물받은 이화여자대학교 티셔츠를 요긴하게 입고 있습니다.) 혹시 적절한 티셔츠가 있다면, 민구홍 매뉴팩처링 앞으로 배송해주실 수 있을까요? 비용은 특강비에서 차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